2025년 6월호

숫자만 보면 남자는 수조 원 자산가, 여자는 월급쟁이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5-06-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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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은 평생 2조 개 이상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 Gettyimage

    남성은 평생 2조 개 이상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 Gettyimage

    남녀평등을 외치는 이 시대에도 생물학적으로 억울한 장기가 하나 있다. 바로 난소다. 남성의 고환과 여성의 난소는 같은 생식기관으로 기능은 유사하지만 생물학적 한계는 하늘과 땅 차이다. 고환은 매일같이 정자를 만들어내며 평생 생식이 가능한 무한 시스템이지만, 난소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개수(사춘기 기준 30만~40만 개)의 난자를 기반으로 제한된 생식 수명을 가진 소멸형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성은 평생 2조 개 이상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지만, 여성은 35~40년 동안 400~500개의 난자만을 최종적으로 배란할 수 있다. 숫자로 따지면 수조 원 자산가와 퇴직이 예정된 월급쟁이의 차이처럼 극단적이다.

    왜 신은 출발선에서부터 이런 불균형을 설계했을까. 왜 남성은 강물처럼 넘치게 하고, 여성은 단 한 방울의 물처럼 아껴야 하는 구조를 택했을까. 단순한 불평등이 아니라면, 이 안에는 분명 생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자는 양을, 난자는 질을 중요시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여성에게는 매달 단 하나의 배란만 허용해 수정의 완성도를 높이고, 정자는 확률 싸움에서 난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압도적 수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무한한 정자와 유한한 난자라는 이 구조는 불공평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이자 전략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난소를 믿는다. 양이 아닌 질을 선택한 기관이며, 마지막까지 생명을 준비하는 생식기관이기 때문이다. 

    정자는 ‘양’, 난자는 ‘질’ 중시

    난자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난자는 몸속에서 수십 년을 배란될 날만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소 기능이 떨어지고, 난자도 산화 스트레스를 받으며 DNA 복제 오류나 미토콘드리아 기능(세포분열 에너지 발전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염색체 분리 오류의 가능성도 커져 수만 개가 남아 있어도 건강한 난자로 구실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실제로 과배란 자극에도 난자가 자라지 않거나, 자란 듯 보여도 공난포이거나, 어렵게 채취한 난자가 염색체 이상으로 유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임신을 포기해야 할까. 필자의 답은 단호하다. 난소를 믿어보자는 것이다. 난소는 고갈 직전에도 마지막 배란을 시도할 수 있다. 미세한 자극에 반응한 난포 하나가 조용히 성장하는 순간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생리학적인 최후의 전력투구다. 

    질식초음파로 난소를 관찰하다 보면, 마치 보름달처럼 선명한 그림자가 떠오르는 순간이 찾아온다. 필자는 그 장면을 ‘생식력의 마지막 불꽃(The Last Spark of Fertility)’이라 한다. 초음파 관찰에서 발견된 난자가 바로 그 난자(염색체 정상)라면 자연임신이든 시험관아기시술(IVF)로든 임신(출산)이 가능하다. 실제 수없이 많은 임상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필자를 찾아와 결국 임신에 성공한, 최악의 난소 기능 저하 여성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도 기억이 또렷한 사례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45세 여성이 국내 메이저 난임 클리닉 두 곳에서 10차례가 넘는 IVF를 시도했지만 실패를 반복했다. 그런 그녀가 배란 유도를 통한 단 두 알의 난포 채취(12차)로 마침내 엄마가 됐다.

    질식초음파로 난소를 관찰하는 모습. Gettyimage

    질식초음파로 난소를 관찰하는 모습. Gettyimage

    또 44세이던 난임 병원 연구원 사례가 있다. 그녀 역시 여러 차례 IVF에 도전했지만 모두 좌절을 겪었다. 어렵게 임신했을 때도 태낭과 난황까지만 발달한 채 태아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자연 배출로 끝나고 말았다며 필자를 찾아왔다. 그녀는 수차례를 더 실패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난포 두 알 채취로 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잊지 못할 기적도 있다. 38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조기폐경 증상을 겪던 교사의 사례다.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지만 그녀는 유산을 겪었고, 남은 한 개의 난자로 수정엔 성공했지만 세포분열이 이뤄지지 않아 이를 폐기해야 했다. 

    그 와중에 폐경이 진행돼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억지로 생리를 유도하던 중, 생리일 5일째 좌측 난소에서 기적처럼 하나의 난포가 관찰됐다. 생리일 8일째에 그 연약한 난포 한 알을 무사히 채취해 동결 보존에 성공했고, 이후 냉동 배아 이식으로 그녀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무정자증 진단을 받은 남편의 고환에서 정자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여인도 있다. 당시 46세이던 그녀는 결국 ‘고환 내 정자 추출술(TESE)’로 정자를 확보해 냉동한 후 캐리어에 담아 필자를 찾아왔다. 그녀의 집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그녀는 50세 가까운 나이에 임신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태아의 염색체이상으로 유산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유산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난임 의사로 살아온 시간 중 가장 큰 슬픔을 맛봤다.

    다음에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란 법은 없다

    필자는 난소 기능 저하가 심한 여성이나 40대 중후반의 여성이라면 “단지 수치만 보고 성급히 포기하기보다 몸의 생식 리듬을 잃지 않도록 조율하며 기다려라.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난임 클리닉을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과배란 주사에 반응이 없다고 낙담하기보다는 매달 자연 배란을 꾸준히 추적하는 전략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한번 자라지 않았다고 해서 다음에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란 법은 없다. 

    다만, 그전에 반드시 되새겨야 할 현실적 전제 조건이 있다. 첫 번째, 반드시 배양 기술력이 검증된 난임 클리닉을 선택해야 한다. 난소 기능 저하 상태에서 어렵게 채취한 난자는 세포질이 약해 미세주사(ICSI) 과정에서 쉽게 손상될 수 있고, 설령 수정되더라도 이후 분열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IVF의 성패는 기계나 장비보다 배양 연구원의 손끝과 감각, 숙련된 타이밍에 달려 있다. 정밀한 배양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의 영역이다. 어렵게 얻은 난자가 미숙한 배양 환경 탓에 그 가능성을 놓치는 일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두 번째, ‘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질’에 집중해야 한다. 난소 기능 저하가 심해 과배란 주사에도 반응하지 않는 경우라면 매달 배란을 면밀히 추적하며 단 하나의 난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1개 난자를 채취하는 데 성공한다면 곧바로 신선 배아 이식으로 승부수를 던져보는 것이다. 

    세 번째, 착상 전 ‘유전 선별검사(PGT-A)’에 대한 아쉬움을 내려놔야 한다. 특히 노화된 난자로 만들어진 배아는 세포막이 약하고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돼 생체검사(biopsy) 과정에서 손상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혹시 자연임신이 됐거나 일반 IVF를 통해 임신이 됐다고 해도 배아를 믿어야 한다. 바로 이 난자가 전력을 다해 배란한 ‘마지막 불꽃(난자)’으로 수정이 성사되고 착상이 됐다면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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